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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장선생묘 (白天藏先生墓)

소재지 화성시 기안동 산7번지이다 지자체화성시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86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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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86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85년 9월 20일이고 관리주체는 수원백씨종중이다.

   

고려 시대 문신이었던 백천장(白天藏)의 묘이다. 태어나고 죽은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백천장은 수원(水原) 백씨로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으며 원나라에 유학하여 우승상(右承相),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등을 역임했다.

원나라의 순제에게 나이가 많아 고국에 돌아갈 것을 청하여 귀국한 후 수성백(隨城伯)에 봉해졌고 그 후 수원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충선왕이 애도하는 마음에 예관(禮官)을 보내 제사를 치르게 하고 시호를 문익(文益)이라 하였다. (경기문화포털)

   

묘역은 2단의 사성으로 후면을 정리하였고 봉분 앞은 장대석을 놓아 앞면을 치장하였다. 봉분은 원형으로 호석을 둘렀으며

봉분의 우측에는 구 묘비와 새로 건립한 묘비가 나란히 있다. 그리고 좌우에는 석양 2기가 있고 그 앞에 구 망주석 2기와 구 문인석 2기가 있다. (화성시청)

   

묘역 앞은 깬돌로 축대를 쌓아 치장하였고 묘역 진입계단 역시 깬돌로 층계를 조성하여 전면적인 정화공사를 한 묘역이다.

그리고 묘역 전방 50m 지점에는 약 5,000여평으로 추정되는 연못이 있고 전방 멀리 고금산이 안산을 이루고 있는 서좌 묘향의 정동향 묘역이다. (화성시청)

   

새롭게 단장하여 고려 후기 무덤 양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순조 13(1813)에 세운 묘비와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장명등과 문인석이 있다.

묘역의 오른쪽 북쪽으로 약 50m 지점에 수원 백씨 시조의 사당이 있고,

묘역의 진입로에 1975년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다. (문화재청)

   

원래부터 있던 비는 높이 102, 너비 30, 두께 13이다.

비의 전문에는 政堂文學水原伯元朝金紫光祿大夫右承相白公天藏配三韓國夫人月城崔氏之墓

(정당문학수원백원조금자광록대부우승상백공천장배삼한국부인월성최씨지묘)’라는 명문이 있고 비문은 송조빈(宋朝彬)이 글을 지었다. (경기관광포털)

   

조선 정조 때 사도세자의 능을 이 근처로 옮기면서 세자의 능에서 10리 이내의 산소는 모두 이장하게 했으나,

그의 묘소는 조정에서 그대로 보존하였다고 한다. (문화재청) 속칭 천사릉(天使陵)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경기관광포털)

   

 

◈ 자료출처    

 

1. 문화재청

2. 화성시청

3. 경기문화포털

4. 경기관광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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