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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소재지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3-1 지자체수원시 종별보물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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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4호로 지정(등록)된 날1963년 1월 21일이며 관리주체는 수원시다.

   

본래 광교산(상광교동 산41번지) 기슭의 창성사 폐사지에 있던 것을 196569일 화성의 방화수류정 곁으로 이전하고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총 높이215cm)의 형태는 장방형 대석 위에 비신(높이150cm, 83cm, 두께13cm)을 세우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어 고려 말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면은 좌측과 하단이 마모가 심하며, 후면은 모두 마모되어 글자를 확인하기가 힘들다.

전면 상단에 증시진각국사비명’(贈諡眞覺國師碑銘)이라 전액을 올렸다.(수원시청)

   

진각국사 천희는 충숙왕 6(1319) 반룡사로 출가하였고 충숙왕 12년에 승과에 급제하여 김생사·부인사·개태사 등에 머물렀고

국사로서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이 되었으며, (경기문화포털) 부석사(浮石寺)를 중수하는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1386)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문화재청)

   

간략화된 고려 후기 석비의 형식을 보이고 있으며, 칠곡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와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230) 등과 비교할 만 하다. 글씨는 고려 전기의 힘있는 풍모가 사라진 투박한 것으로, 고려 후기의 글씨가 퇴보하였음을 보여준다.

비문은 이색이 짓고 승려인 혜잠이 글씨를 새겼다. (문화재청)

   

   

◈ 자료출처    

 

1. 문화재청

2. 수원시청

3. 경기문화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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