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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대(戀主臺)

소재지 과천시 자하동길 62(중앙동 85-2) 지자체과천시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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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등록)된 날은 1973년 7월 10일이며 관리주체는 연주암이다.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30m의 축대를 쌓고 나한전(응진전:應眞殿)을 지은 곳을 말한다.

 

관악산 연주암지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문무왕 17(677)에 한강 남쪽에 유화(遊化)하다가 관악산의 명미 수려함을 수하여

산정에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冠岳寺)를 개산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멸망 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康得龍:묘가 과천시청 뒤에 있음)이 서견, 남을진 등과 같이 두문동 72인의 행적을 본따

불사이조(不思二朝)의 뜻을 품고, 관악산의 상대에 올라 송경(개성)을 향해 통곡을 하며 전조(고려)를 연모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 개국 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를 듣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함에 즈음해서

이 연주대에 친히 올라 국운장구를 빌며 원각(圓覺연주(戀主) 두 절을 짓고 서울을 비치는 화산(火山) 불길을 진정시키고자 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 때 양녕대군이 중에게 준 오언절구 山霞朝作飯 蘿月夜舂燈 獨宿孤巖下 惟存塔一層

(산노을로 아침밥을 짓고, 女蘿의 덩굴에 걸린 달이 불을 밝히네. 홀로 외로이 바위 아래 오로지 탑 한층만이 남아있네)”이라는 한시가 명시로 전하며

효령대군은 여기에서 오랫동안 수도하였기에 그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내려온다. 세조 때에도 태조 때의 예에 따라 여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한다.

 

연주대에 얽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고, 철종때 김완송스님이 2폭의 나한 탱화에 각각 여덟분의 나한을 그려 16나한을 봉안하여 나한전이라고도 부른다.

법당 내에는 근세작으로 보이는 석가 3존상이 모셔져 있으며, 나한 탱화는 색감이 화사하고 사실적이다.

 

응진전입구에는 우진각지붕 형식의 마애감실에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을 준다는 약사여래가 입상으로 봉안되어 있는데 왼손에 약병을 들고,

오른손에 시무외(施 無畏)의 인()을 들고 있다.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나한전법당 중수기에 의하면 효령대군이 조성)로 추정하고 감실의 조각수법 등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그 뒤에는 우뚝 솟은 말바위馬巖가 있어서 이 바위에 올라타면 득남할 수 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 자료출처

 

1. 문화재청

2. 과천시청

3. 경기문화포털

4. 경기관광포털

5. 한국민족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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