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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수안산성(金浦守安山城)

소재지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산117 지자체김포시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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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등록)된 날1996년 1월 18일이며 관리주체는 김포시다.

 

김포시 대곶면의 수안산 정상부에 위치한 테뫼식(산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 것) 석축산성이다.

 

수안산(燧安山)’(해발 146.8m)이라는 명칭은 정상부에 조선시대의 봉화대(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이름 붙여진 것으로,

수안산성(守安山城)을 수안산성(燧安山城)이라고도 쓴다. 지리적으로 강화도와 마주보며 육지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안산 봉수는 남쪽으로는 김포 백석산 봉수에 응하고, 바다 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에 응하였다고 한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수안산성에 대하여 대곶면 율촌리에 있으며, 낮은 토루 약 4백칸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문화유적총람에는 표고 140m의 수안산 정상부에 석축으로 쌓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산성으로 석축은 높이 510m 의 험준한 요새를 구축하였다.

일부 무너진 곳을 보면 석축의 두께가 12m이며, 성내부의 면적은 약 3천평이다.

 

성 바로 아래에 강화도와 배로 왕복할 수 있는 포구가 있고, 산성 안에는 도마뫼라고 불리는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는 옛날 도장군이 타고 다니던 애마가 묻혀 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 성은 1985년 경기도 백제문화유적 조사 때 조사된 바 있으며,

이후 1995년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본격적인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산성의 둘레는 685m에 성 내부의 면적은 약 1,000m² 정도로 동서 방향을 장축 방향으로 하는 장타원형이다. 성벽과 내부는 1985년까지 군부대가 주둔하여

많은 부분이 인위적으로 파괴된 상태로 성벽은 남벽 일부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잔존 성벽의 규모는 높이 2.2m(10)로 원 성벽의 높이는 3m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외부에 돌을 쌓는 축조방법은 한강유역 통일신라의 산성 양식과 비슷하며,

성돌은 크기가 일정치 않은 장방형의 할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현재 10단 정도가 남아 있다.

 

출토된 유물을 보면 토기 조각은 단각고배류, 인화문토기 합, , 등이 주류를 이루며, 단경호와 시루 등도 발견된다. 

기와는 격자문, 어골문, 선문, 복합문의 순으로 수습되는데 대체로 신라통일신라 시대의 유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를 보아도 신라가 진흥왕시기 한강하류 지역을 장악하고 쌓은 성으로 생각된다.

 

성내 시설물로는 정상부에 1개소, 남벽 부근에 3개소 등 4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며, 서벽에 문지(門址)와 치성지(致誠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내에서 우물 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고, 수안산에 발원하는 하천이 3개나 되는 만큼

물의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서해안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1. 경기도백제문화유적(김병모·심광주, 한양대학교박물관, 1986)

2. 문화재청

3. 김포시청

4. 경기문화포털

5. 경기관광포털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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