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돌봄 문화재 경기도 문화재에 대한 다양 정보를 시별 / 종별 구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운산성 (瑞雲山城)

소재지 안성시 서운면 북산리 산2 지자체안성시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81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링크드인
  • <
    /li>

경기도 기념물 제81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85년 6월 28일이고 관리주체는 안성시이다.

   

차령산맥의 주된 봉우리인 서운산의 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마치 말안장 모양으로 쌓은 토성인 서원산성은 북산리성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성이 있는 곳은 평균 고도가 해발 490m쯤 되는 고지이며 심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차령산맥을 관통하여 직산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인 협탄령이라는 고갯길이 있는데, 산성은 이 교통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토축 또는 토석혼축으로 쌓았으나 남벽과 동벽의 일부 구간에는 석축의 흔적도 발견된다.

남벽 일부를 제외하고 비교적 성벽이 잘 남아있으며, 성벽 안쪽에는 도랑을 판 흔적도 있다. 현재 서남쪽에는 좌성사(座聖寺)가 있으며,

이 절의 뒤쪽 계곡에는 돌부처와 용이 같이 살았다는 용굴이 있다.

   

성의 둘레는 620m이고, 흙을 쌓은 곳은 450m 가량 되는데, 흙은 능선을 따라 깎아서 다졌으며 내황(內隍)을 만들었다. 가파른 자연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성안에는 전투시 지휘하던 장대(將臺)로 이용된 장수바위가 있고,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북쪽에 2, 남쪽에 하나가 있다.

주로 남쪽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남문터 근처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으며 성의 북동부에는 56미터 정도 높이의 흙계단이 있다. 5곳의 우물터가 발견되어 비교적 물이 풍부함을 알 수 있다.

가뭄이 났을 때 이 우물을 깨끗이 하고 비를 빌면 신령의 기묘한 반응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 성안에서는 절터, 높이가 2m인 석불, 작은 동굴, 토기조각들이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생각된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홍계남 장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선조 25(1592)년에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안에서 발견된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처음 쌓아서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이용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개축하여 사용해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 홍계남(洪季男)과 이덕남(李德男) 장군이 왜군을 격퇴한 엽둔령(葉屯嶺)이 진천군과의 경계인데,

홍계남이 서운산 정상에 쌓은 성을 우산성(右山城)이라 하고, 덕봉리 앞산에 이덕남 장군이 쌓은 성을 좌산성(左山城)이라고도 한다.

   

기록에는 서운고성의 둘레가 3리라 하고, 금강고성을 둘레 5리라 하였다. 산 아래에 홍계남 장군이 싸운 곳에도 토성이 있다고 한다.

   

남문터 아래로 향하면 약천암과 토굴암과 만나고, 동남쪽으로 1km 내려가면 청룡사가 나온다. 청룡사로부터 선운사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어느 길이든 2시간이면 산성도 여유롭게 돌아보고 내려갈 수 있다. 산성을 둘러싼 숲길은 평화로운 산책을 돕는다. 서운산에서 꼭 챙겨봐야 할 유적이다.

 

 

◈ 참고문헌 ◈

 

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

3. 기전읍지(畿甸邑誌)

4. 안성군지(安城郡誌)(안성군지편찬위원회, 1990)

 

 

◈ 자료출처

 

1. 문화재청

2. 안성시청

3. 경기문화포털

4. 경기관광포털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링크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