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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구포동성당 (安城九苞洞聖堂)

소재지 안성시 혜산로 33 지자체안성시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82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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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82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85년 6월 28일이고 관리주체는 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이다.

  

1970년까지 안성본당으로 불린 안성시 구포동에 있는 천주교 성당이다.

안성시내의 진산(鎭山)인 비봉산(飛鳳山)의 지맥인 구포동 동산에 서남향으로 건립되어 안성시내를 조감하는 위치에 있다.

   

본 성당의 기원은 1866년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 안성, 죽산, 미리내 등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데서 연유된다.

아산 공세리 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었다. 광무 5(1901) 프랑스 신부인 꽁베르(R.Antonio A.Combert, 한국이름 공안국(孔安國)가 전에 군수를 지낸

백씨(白氏)의 집을 사서 임시성당으로 사용해오다가,

1920년 성당 건립운동을 벌인 후 2년만인 19223월에 당시 보개면 신안리 동안 마을에 있던 동안강당을 매입하여 건립하였다.

   

1,124평의 대지에 97평의 건평으로 현재 건물은 동안강당의 목조기둥·서까래·기와 등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대부분의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왔다.

이후 설계 및 감독은 푸아넬(poisnel, V.)신부가 맡았으며,

1925년에 덕원수사원(德源修士院) 목공부 출신의 원재덕(元載德)에 의하여 제대(祭臺) 뒷벽면에 조각장식이 이루어졌고,

종탑부는 1955년에 고딕양식의 벽돌조로 증축되었다.

   

앞면 5·옆면 9칸으로 되어 있으며, 종탑부에는 3개의 뾰족한 탑이 있는데, 가운데는 끝이 8각형으로 변형되었고, 양쪽의 것은 사각뿔로 되어있다.

1955년에 본 건물에 있던 당초의 정문을 헐고 로마네스크 풍의 벽돌 성당건축으로 새로 부착하여 지은 것이며, 종탑부의 하부는 개방되어서 출입구의 구실을 하고,

종탑부와 입구 한 칸이 2층으로 되어 있어 성가대석으로 쓰인다.

   

평면은 긴 십자가형으로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라틴십자형이며, 날개채가 크게 돌출되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장방형에 가깝다.

입구는 서쪽에 위치하며 중앙에는 회중석이 있고 동쪽 끝에는 제단이 있어 서양식 성당의 공간구조와 유사하다.

회중석은 좌우에 고주(高柱)가 열지어 서 있는 신랑(身廊, nave)과 그 옆의 측랑(側廊, aisle)으로 구성되었다.

측랑 상층의 회랑(廻廊)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측면에는 채광을 위한 고창이 나 있다.

   

제대는 회중석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내부 천장도 모두 평반자 형식이다.

구조는 목조기둥과 보가 짜 맞추어져 골조를 이루고 그 사이에는 회벽으로 마감되었으며 창문 아랫부분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에는 서까래가 걸리고 한식기와가 올려 졌는데 처마는 비교적 짧다.

   

가톨릭 성당 건축을 짓기 시작하던 초기 단계의 건축을 보여주는 예로, 건물의 내부 장식이 서양식인 반면

구조와 외곽은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채택하여 초기의 성당건축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1963년에 수원교구에 편입되었고, 1981년 본당 구내에 안법신용협동조합(安法信用協同組合)이 창설되어

1951년에 개교한 안법 중고등학교와 함께 현재까지 운영되어오고 있다.

 

 

◈ 참고문헌 ◈

   

1. 안성천주교회발전사료(安城天主敎會發展史料) 1(안성천주교회사편찬위원회, 1979)

2. 천주교회약현지방사(天主敎會藥峴地方史)(약현천주교청년회, 1933)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자료출처

1. 문화재청

2. 안성시청

3. 경기문화포털

4. 경기관광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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