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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안동김씨고가터(抱川鑛山安東金氏古家-)

소재지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7 지자체포천시 종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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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8호로 지정(등록)된 날2006년 4월 24일이며 관리주체는 포천시다.

 

안동김씨고가터는 조선시대 포천지역에 거주했던 안동김씨의 고택으로 2004년 발굴조사를 통해 안채와 사랑채 등의 초석이 발견되었다.

고가에는 맑은 물과 절경이 어우러진 영평지역 8곳의 절경(영평팔경) 중 금수정이 있었으며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곳으로 외부 손님들이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가옥구조에서 사랑채의 규모가 큰 편이다. 안동김씨고가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한강 이북 지역에 몇 안 되는 조선 후기 양반가옥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을 복원하였다. (문화재청)

 

안동 김씨 종가 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인근에 위치한 금수정(金水亭)에 대해서는 16~17세기 기록이 있지만,

안동 김씨 종가 터에서 확인된 집터의 편년은 16~17세기 기록보다 후대의 것이어서 집터와의 연관성은 확인하기 어렵다. (포천시청)

 

안동 김씨 종가 후손인 김광분의 진술에 따르면, 종가는 6·25 전쟁 이전까지는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전쟁 중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후손들이종가에 왔을 때는 건물이 모두 붕괴된 상태이었고, 주변은 화재로 생긴 폐기물이 뒤덮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후손들이 건물 터 상면을 대충 정리하고 그 위에 가옥과 기타 건물을 짓고 건물 주변으로는 경작지를 조성하였다. (포천시청)

 

가옥과 기타 건물을 지을 당시 석재가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었고, 이 석재 중 일부는 제거하고 일부는 재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

경작지의 경우는 경작을 하면서 인력으로 제거할 수 있는 석재는 전부 제거하여 서쪽 비탈면 아래쪽에 모아 두었다.

또한 전쟁 후 마을 사람들이 건물의 구들 시설에 사용된 석재를 가져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유구(遺構)가 일부는 파괴되었고 일부는 반출되었다. (포천시청)

 

안동 김씨 종가 터는 금수정 서쪽에 형성되어 있는 2단의 평탄지 중 상단의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영평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에 조성되어 있는 길은 금수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남서쪽에 조성되어 있는 길은 사슴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주위에는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7번지이다. (포천시청)

 

안동 김씨 종가 터 일대는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고, 초석과 기단석이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어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이 일대는 포천에 주둔하는 군부대의 훈련 지역이어서 유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포천시는 안동 김씨 종가 터에 대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보호하기 위해 단국 대학교 매장 문화재 연구소에 조사를 요청하였다.

단국 대학교 매장 문화재 연구소는 2004128일부터 1219일까지 발굴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건물 터와 기타 부대시설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는 태토나 제작 기법, 모양이 거의 동일하였다. 기와류는 망새, 수막새, 미구 수키와, 암키와 등이 출토되었다.

자기류는 조선 자기와 중국 자기가 출토되었다. (포천시청)

 

집터의 전체 규모는 약 1,050[318]이다. 건물 터는 4동이며 주향이 모두 남동 45°이다. 내부는 안채와 중문 및 광, 솟을대문과 행랑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터는 초석과 기단석 일부만 잔존하고 있다. 기단은 현재 1단만 잔존하고 있으며 남쪽과 서쪽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고,

북쪽과 동쪽에서는 기단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건물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다. (포천시청)

 

초석은 총 8기가 확인되었으며, 북쪽에 주로 남아 있다. 없어진 초석 자리에서 적심은 확인되지 않는다. 초석이 이탈되면서 초석 아래 적심도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문과 광 터는 기단석과 초석이 잘 남아 있으며 건물 규모도 파악이 가능하다. 기단은 현재 북쪽과 남쪽에 1, 서쪽에 2단이 잔존하고 있다.

동쪽은 기단석이 확인되지 않지만 기단석을 놓기 위해 시설한 적심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건물 터 내부에서는 총 9기의 초석이 확인되었으며,

초석이 없는 자리에서는 적심이 확인되었다.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현재 후손이 안채 터에 현대식 건물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포천시청)

 

안동 김씨 종가 터는 다른 종가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건물이 일정한 규격에 의해 배치되었고,

둘째 공간을 확실히 구분하였으며, 셋째 종가 터의 규모가 일반 종가에 비해 작다는 특징을 고려하면 안동 김씨 종가 터는

조선 후기 건축 양상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치를 자제하려는 의도에서 최소한의 공간과 건물로 종가를 구성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견해는 채제공(蔡濟恭)[1720~1799]금수정 중수기에서 금수정을 전원(田園)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금수정이 안동 김씨의 전원이었고 따라서 집을 소규모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천시청)

 

 

◈ 참고문헌 ◈

 

1. 단국 대학교 사학과포천군의 역사와 문화 유적 (단국 대학교 출판부, 1998)

2. 문화 유적 분포 지도-포천시(단국 대학교 매장 문화재 연구소, 2004)

3. 포천 안동 김씨 종가 집터 발굴 조사 보고서(단국 대학교 매장 문화 연구소, 2005)

 

 

◈ 자료출처 ◈

 

1.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 문화재청

3. 포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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