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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朝宗岩)

소재지 가평군 하면 대보간선로 399(대보리 176-1) 지자체가평군 종별경기도 기념물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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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날1975년 9월 5일이며 관리주체는 마영섭씨다.

 

조종암이란 바위에 새긴 암각문, 비석, 단지(壇址) 등의 유적을 통틀어 일컫는다.

암각문은 朝宗巖(조종암)』『思無邪(사무사)』『日暮途遠 至通在心(일모도원 지통재심)』『萬折必東 再造瀋邦(만절필동 재조심방)등으로

한 곳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비석은 이 바위들의 바로 앞쪽에 세워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통묘가 있으며

그 앞으로는 맑은 조종천이 산굽이를 돌아 흐르고 있다. 조종암을 이곳에 세우게 된 이유는 조종천이 있기 때문이다.

조종(朝宗)이란 명칭이 여러 강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모인다는 뜻이면서 또한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조종천이 조종암을 조성한 당시의 유신들에게 선택되어 숭명배청(崇明排淸)의 장소로 조성된 것이다.(가평군청)

 

바위에는 조선 숙종 10(1684)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풀어준 은혜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부터 당한 굴욕을 잊지 말자는 뜻의 여러 글귀를

가평군수 이제두와 허격, 백해명 등이 새겨 놓았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글씨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특함이 없음)’,

조선 선조의 글씨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일만 번 꺾여도 반듯이 동력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

송시열이 쓴 효종의 글귀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道遠 至痛在心: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

낭선군 이우가 쓴 조종암(朝宗巖:임금을 뵈이는 바위)’이란 글귀 등이 적혀 있다.(문화재청)

 

순조 4(1804)에는 이러한 유래를 적은 기실비(起實碑)를 암벽 앞에 세웠는데 , 비문은 조진관이 짓고 김달순이 썼다.

또한 순조 31(1831)에는 명나라 9의사(병자호란 때 청에 잡혀간 봉림대군과 합심하여 인조 23년 대군이 귀국할 때 우리나라로 망명했던 명나라 사람들)

후손인 왕덕일(王德一정석일(鄭錫一풍재수(馮載修황재겸(黃載謙) 등이 이 곳에 와서 지방유림 등과 함께 조종암 근처에 새로 제단을 만들고,

대통행묘(大統行廟)와 구의행사(九義行祠)라 명칭하였다.

그 후 이 곳에서, 매년 음력 14(명나라 건국일)에는 명나라 태조에게, 16일에는 명나라 9의사에게 제사를 지냈다.(문화재청)

 

◈ 자료출처 ◈

 

1. 문화재청

2. 가평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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